2022년 여름 덴마크, 출발선에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천으로 된 배너 아래 나와 아들이 서 있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아들은 후드를 뒤집어쓰고 내 팔 안쪽에 몸을 붙이고 있다. 배낭은 작고 표정은 어정쩡하다. 아직 한 걸음도 걷기 전이다. 그해 우리가 걸은 거리는 72km였다.
4년 뒤인 2026년 여름, 스웨덴 라플란드의 나무 게이트 아래에서 다시 사진을 찍었다. 이번엔 도착지였다. 110km를 다 걷고 난 뒤였다. 옆에 선 아이는 키가 나와 비슷해졌고, 자기 배낭을 메고 있었고, 팔을 내린 채 그냥 옆에 서 있었다.
한 장은 출발선, 한 장은 도착지. 그 사이에 4년이 있다. 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에서 중학교 2학년이 되었고, 걸은 거리는 72km에서 110km로 늘었다.
말로는 줄 수 없는 것
나는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일을 한다. 심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직업이다. 그런데 정작 내 아들에게는 그게 잘 통하지 않았다. 아들이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대화가 줄었다. 물어보면 단답이 돌아오고, 좋은 말을 해주려 하면 표정이 굳는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았다. 말 대신 경험으로 주자고.
아이에게 심어주고 싶었던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자기효능감, '나는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감각이다. 다른 하나는 회복탄력성. 오늘 바닥까지 갔어도 자고 나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능력이다. 이 두 가지는 사춘기 아이에게는 재미없는 잔소리가 된다. 힘들지만 끝내 해내는 경험을 실제로 통과해야 몸에 남는다.
피엘라벤 클래식은 그런 조건을 갖춘 자리였다. 니칼루옥타에서 아비스코까지 110km를 걷는다. 앞쪽 30km는 접근로를 따라가고, 그 다음부터는 스웨덴 라플란드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400km가 넘는 트레일 쿵스레덴Kungsleden 북쪽 구간에 올라선다. 텐트와 침낭과 나흘치 식량을 전부 짊어져야 하고, 쓰레기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되가져와야 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따라왔다. 중2가 된 이번에는 자기 뜻보다 아빠 뜻이 컸다. 절반쯤은 내가 데려간 것이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다.


풍경은 어제와 비슷해지고
첫날은 의외로 순조로웠다. 툰드라의 풍광이 아이를 붙잡았다. 시야가 트이는 지점에서 아이가 먼저 감탄사를 뱉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윈도우 7 배경화면이다!"
중2다운 표현이지만 최고의 칭찬이었을 것이다.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나온 말이라 더 그랬다. 붙잡아준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순록 뿔을 간판에 매단 노점이 나왔다. 이름은 '랩 다날즈Lap Danalds', 라플란드와 맥도날드를 합친 이름이다. 여기서 파는 순록버거를 먹고 아이 표정이 풀렸다. 호수를 건너는 보트를 탄 것도 한몫했다. 첫날에 이런 장치가 연달아 있는 것은 사치가 아니라 필수다. 첫날 28km를 걸었다.

문제는 둘째 날부터였다. 풍광은 어제와 비슷해지고, 다리는 어제보다 무겁다. 이때부터 아이의 말수가 줄었다. 나도 굳이 말을 걸지 않았다. 셋째 날에는 Tjäktja 고개를 넘었다. 해발 1,150m, 쿵스레덴 전체의 최고점이다. 8월 라플란드의 날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뀐다. 비가 오다 개고, 바람이 불다 멎는다. 체감온도를 결정하는 것은 기온이 아니라 젖는 것과 바람이라는 사실을 이 구간에서 다시 배웠다.

그런데 이 침묵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여기서 내가 원했던 것이 시작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춘기 아들과의 트레킹은 대화보다 경험이 중심이다. 나란히 걷는 동안 아이는 아빠와 대화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과 대화한다. '다음 봉우리까지 갈 수 있을까, 지금 멈추고 싶은데 정말 멈춰야 하나, 어제도 이만큼 힘들었는데, 걸을 수 있겠지.' 그 내면의 대화가 하루에 몇 시간씩 반복될 것이다. 말로 심어줄 수 없는 것을 아이가 스스로 심고 있었다.


나흘째, 아이가 먼저 말했다
원래 계획은 닷새였다. 그런데 나흘째 아침, "그냥 오늘 완주하자"고 아이가 먼저 말했다. 솔직히 말리고 싶었다. 남은 이틀치를 하루에 몰아 걸으면 38km가 넘는다. 나는 트레킹을 시작하기 닷새 전에 라트비아에서 트레일러닝 대회를 뛰고 온 참이라 몸이 이미 무거웠다. 그런데 아이 표정이 진지해서 하루 만에 끝내기로 했다.
결국 오전 8시 54분에 출발해 오후 8시 52분에 아비스코에 도착했다. 꼬박 열두 시간이었다. 중간에 보트를 한 번 탔으니 온전히 걸은 것은 아니지만, 그날 아이가 스스로 결정하고 자기 발로 끝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나중에 시계 기록을 보고 놀랐다. 나흘 중 가장 길게 걸은 날인데 내 평균 심박이 가장 낮았다. 첫날 101, 둘째날 109, 셋째 날 105, 그리고 마지막 날 94. 몸이 나흘 만에 걷는 일에 적응한 것이다. 아이의 몸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회복탄력성이란 결국 이런 것이 아닐까. 어제의 바닥이 오늘의 바닥이 아니게 되는 것.
물론 계획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았다. 마지막 5km를 남기고 아이가 먼저 사라졌고, 나는 한 시간을 찾아 헤맸다. 결국 만났을 때 아이에게 화를 냈다. 지금 돌아보면 그건 화가 아니라 겁이었다. 105km를 걸어온 아이가 마지막 5km에 앞서 나갔다는 건 자기 발로 끝내고 싶었다는 뜻인데, 심리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도 자기 아이 앞에서는 이렇게 서툴다.

와펜 한 장
결승선에서 완주 와펜을 받았다. 그 자리에서 아이가 한 말이 이번 여행의 진짜 결말이었다. '나머지 와펜도 다 모으겠다'는 것이다. 피엘라벤 클래식은 나라마다 열리고, 완주하면 그 나라 와펜을 준다.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답게 아이는 이걸 모아야 할 것으로 받아들였다. 2026년 기준으로 덴마크, 스웨덴, 독일, 영국, 미국, 칠레 그리고 한국에서 열린다. 한국 코스는 한라산이다. 아이의 다짐이 막연한 소리만은 아닌 셈이다.
솔직히 웃음이 났다. 내가 나흘 동안 자기효능감이니 회복탄력성이니 하는 것을 심으려 애썼는데, 아이가 꺼내든 동기는 와펜을 다 모으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게 더 나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른의 언어로 설명되지 않아도 아이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저건 내가 해낼 수 있는 일이라는 걸.


걸음 수만큼 말이 오간 것은 아니었다. 나흘 내내 우리는 대체로 조용했다. 그런데 그 걸음 수만큼 농도가 진한 경험과 기억이 남았다. 살다 보면 누구나 자기 한계 앞에 선다. 그때 "예전에 나 그거 해냈지"라고 꺼내 쓸 카드 한 장, 아빠가 줄 수 있는 건 그 정도다.
마지막 날, 우리 앞으로 아버지와 다 큰 딸이 둘이서 걸어가는 것을 봤다. 나에게는 일곱 살 딸이 하나 더 있다. 언젠가 그 아이에게도 자기 자신과 대화할 시간이 필요해지면, 그때도 같이 걸을 생각이다.

가장 길게 걸은 마지막 날, 심박은 가장 낮았다.
월간산 2026년 10월호 독자투고(268–271쪽)에 실린 글입니다.
